매일 신문 가판대에서 빼돌린 데일리 선셋의 사건 사고 페이지에는 늘 그들 이야기가 실렸다. 그런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영웅들. 이 쓰레기통 같은 도시를 어떻게든 해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 그러니까 입에 발린 소리나 해대는 정치인이나 무능한 경찰들 말고- 진짜 구원자들. 그 기사들이 내게 영감을 줬다. 나는 내 방 한쪽 벽이 까맣게 뒤덮이도록 신문을 오려 붙였다. 내 머리 한쪽 구석이 까맣게 뒤덮이도록. 그리고 내가 이 불행하고 갑갑한 삶을 더 견딜 수 없게 됐을 때, 그들과 비슷하게 해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영웅 노릇은 그럴싸한 비니 모자 하나를 훔치는 거였다. 커다란 모자를 턱 아래까지 끌어내려 얼굴을 덮은 꼴은 영웅보다는 노상강도에 가깝게 보였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허술한 애송이 범죄자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대로 지하철역으로 달려 나갔다. 누군가 내 꼴에 무안을 주거나 경찰에게 신고하는 걸로 끝났다면 내 영웅 노릇도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난 마치 내정된 운명처럼 소매치기를 맞닥뜨렸다. 그놈을 쓰러트리고 가방을 원래 주인인 노인에게 돌려주는 순간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다음은 뒷골목 강도였고, 총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약쟁이를 제압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대범해지고 점점 더 잦아졌다. 늘어가는 상처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나는 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매일 밤 해가 지면 집에서 빠져나가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패고 길 잃은 양들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는 일 말이다. 어느 순간 데일리 선셋이 내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안 입는 옷을 기워 만든 우스꽝스러운 코스튬도, 화질이 나쁜 야간 cctv 캡쳐 화면으로 보니 그럴싸해 보였다. 나는 점점 더 이 일에 몰두했다. 점점 더…….
데일리 선셋에 익명의 자경단 기사가 실리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낮의 ‘나’는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더 이른 저녁에 집에서 나서서 더 늦은 새벽에 돌아왔다. 새벽까지 싸움을 벌이고 다니는 바람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일하는 현장 반장은 몇 번의 최후통첩 끝에 나를 해고했다. 그에게 그리 불만은 없었다. 내가 그 사람이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사실 해고당했을 때 내심 안도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이 사라지자 나는 밤에 하는 일에 더 몰두하게 됐다. 더 위험한 일에 손을 대고 점점 더 무모한 싸움을 하게 됐다. 내가 그렇게 나 자신을 망치고 있을 때, X가 나를 찾아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X가 그렇게 우리를 모으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렇게 흩어질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고. 우리는 그냥 따로 주먹이나 꽤 쓰는 뒷골목 싸움꾼들로 남았을 테니까. 밤마다 슬럼 뒷골목으로 기어가서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총 든 놈들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인간들은 보통 사회성이 별로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치면 X가 해낸 일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면 우리들이 너무 빨리 죽거나 은퇴하거나 감쪽같이 사라져 관계가 제대로 틀어질 시간도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안실을 헤매고 다니며 수많은 존과 제인 도우들 사이에서 그를 찾아냈다. 그러면 그가 얼마나 좆같은 인간이었던가 하는 사실은 잊히고 추억만 남았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
X는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우리가 존 도우와 제인 도우를 뒤지러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신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죽음을 보도하며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자경주의의 죽음.’ 나이터스의 치부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그의 유서를 통해 우리는 한 순간에 슈퍼 히어로에서 영웅 놀이에 심취해서 분별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사회악이 됐다. X가 대체 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그게 정말 그가 남긴 것이긴 한지, 정말 죽은 게 맞는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유서 한 장으로 우린 모두 죽어버렸다.
우리가 숨어 있는 동안 세상은 우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범죄 조직과 함께 이 도시를 무법 지대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는 억지 누명을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믿을 줄이야. 나이터즈라는 이름은 영웅에서 테러리스트로 전락했고, 얼마 남지 않은 이들도 그림자 속에 숨어서 움직인다. 그렇게 우리는 지나가 버린 역사가 됐다.
우리가 이 도시를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굴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