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시티, 가장 밝은 곳에서도 밤이 사라지지 않는 도시
내가 나고 자란 이 도시는 원래 이름보다 이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철이 없던 시절에는 밤중에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두꺼운 커튼 사이에 기어코 고개를 들이밀고 밖을 내다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비명이나 총성을 무시하고 잠을 청하는 나이가 됐다.
동이 트면 가족은 퍽퍽한 그래놀라를 씹으며 간밤에 일어난 범죄 소식을 읊어주는 앵커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흘려 듣는다. 그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간신히 위안거리를 찾을 수 있다.
길거리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게 하는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 뒷골목을 허술하게 가린 폴리스라인, 전면 유리가 산산조각이 난 마트. 굳은 표정으로 유리를 쓸고 있는 아시아인 마트 주인. 나는 혐오 문구 그래피티가 휘갈겨진 담벼락을 지나치며 헤드폰을 낀다. 시끄러운 락 음악 볼륨을 최대한 올리면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나는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 무리를 거슬러서 버려진 항구로 향한다. 난 여기가 좋다.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 반쯤 바다에 잠긴 채로 버려져서 삭아가고 있는 선박들과 대체 뭐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를 컨테이너들이 즐비하다. 오래된 도시 재건 사업 현수막이 낡은 철근에 매달려 휘날린다. 서던 릿지 항구가 미국 북동부 무역의 중심지였던 시절의 흔적들. 이제는 내가 조용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일 뿐이다. 기울어진 크레인 위에 기어오르는 수고만 좀 들이면.
크레인 위에 올라서면 도시가 한눈에 보인다. 항구는 도시 중심을 절반으로 가르는 강이 바다와 만나는 모퉁이에 있다. 항구가 붙어있는 서던 릿지는 구도심이다. 강 위쪽은 시장의 재건 사업으로 급격하게 발전한 신도심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마천루와 깔끔하게 정돈된 길이 깔린 신 도심은 서던 릿지와 고작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구역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뉴스에선 연일 재건의 성공에 대해서 떠들어댔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 재건 사업 덕에 도시의 나머지 절반이 쓰레기통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이민자, 범죄자, 변종, 마피아……. 높으신 분들이 원하는 잘 나가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쓸려 내려와 고이는 곳. 시장은 더러운 것들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듯 이 구역에 쏟아 넣고 단단히 밀폐했다.
썩어가는 도시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쓰던 사람들 또한 재건 사업 이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까 입에 발린 소리나 해대는 정치인이나 무능한 경찰들 말고- 영웅들. 밤의 도시를 안전한 곳으로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들. 나이터스Nighters. 나도 한때는 만화책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들 처럼 그들을 영웅으로 여기기도 했다. 한때는.
이제는 밤에 누군가 비명을 지르더라도 아무도 돕지 않는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나는 기분이 좀 괜찮아질 때까지 크레인 위에 드러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한나절 꺼놓은 휴대폰을 켜자, 집에서 부재중 전화가 여럿 와 있다. 전화를 다시 거는 대신 움직인다. 해가 저물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골목 구석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서두른다. 폐건물을 아지트로 삼은 마약 중독자일 것이다. 떠돌이 개들이나. 아니면 나랑 처지가 비슷한 불량 청소년일 수도. 이 거리 어딘가에서 마피아의 밀수품이 드나든다는 소문도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없다. 나는 걸음을 좀 더 서두르며 귀청이 터질 것처럼 높였던 음악 볼륨을 줄인다. 걸음 소리가 계속 따라온다. 아침에 스쳐 지나가듯 본 살인 사건 뉴스가 생각난다. 허술하게 모자이크가 된 내 사진과 영안실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내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떠올린다. 와중에도 내가 학교에 갔을 거라고 믿고 있을 가족 생각이 난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그도 뛰기 시작한다.
곧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왔나 싶더니 단단한 팔이 목을 낚아채듯 조르기 시작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채다가 그와 함께 바닥을 구른다. 하늘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하늘이 된다. 얼핏 시선이 마주친 것 같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의 말끔한 시선을 보아하니 마약 중독자는 아닌 모양이고, 떨지 않는 걸 보니 이런 일을 많이 해본 것 같다. 따돌리고 달아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압도된다. 그가 입술을 달싹거린다. “얌전히 굴어, 아니면……”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때 총성-아니 타격음?-이 들린다. 동시에 풀리지 않을 것 같던 힘이 사라지고 내가 힘없이 쓰러진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쪽에서 영웅이 나타난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까 유치한 히어로 이야기 따위를 믿을 나이는 이미 지났는데도 말이지. 비명을 지르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끼워 맞춘 만화 연출처럼. 그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정신을 잃는다.